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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정신으로 국위선양과 호암 탄생 103주년을 맞아

뉴스타★ 2013. 8. 27. 01:45


기업정신으로 국위선양과 호암 탄생 103주년을 맞아

June 3, 2013 at 11:16am

올해로 23회를 맞은 호암식 시상식이 지난5월31일에 차분한 분위기 속에서 성황리에 행사를 마쳤다. 호암상은 호암 이병철 선생의 인재제일주의와 사회공익정신을 기려, 학술·예술, 사회발전과 인류복지 증진에 탁월한 업적을 이룬 인사를 현창하기 위해 1990년 이건희 삼성 회장이 제정한 상으로 현재까지 총 117명의 수상자를 선정해 시상해 왔다. “문화는 그것이 창조되고 수용되어 궁극적으로는 모든 국민의 것이 될 때 비로소 생명력을 갖게 된다. 아름다운 문화유산을 풍요롭게 가꾸어 후대에 물려줄 수 있는 시대야말로 민족사에서 가장 빛나는 시대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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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세상을 향해 야망을 품고 또는 사회를 향해 반항을 하던 학창시절에 돈병철이라 별명이 붙을 만큼 돈을 포대자락으로 긁어모으던 한 기업가가 있었다.그의 눈부신 기업성장에 사람들은 부러움으로 쳐다보고만 있었다. 이때 문화 창달에도 눈을 떼지 않은 삼성 창업자 호암 이병철회장이 호암아트홀을 설립하며 축사에 남긴 말이다. 깡마르고 촌노 같지만 우직하고 기업가로써 독보적 존재였다. 이제 이병철 회장은 돈만 밝히는 ‘돈병철’이란 별명에서 문화유산을 아는 재벌로 인식되었으니 개인적으로는 역사적인 도약이었다. 현재의 삼성가는 국가보다 더 많은 국보급 보물를 지녔다고 할 만큼 한국 역사와 문화의 뿌리를 잡고 있다고도 할 수 있다. 호암 이병철회장은 한국50년대, 60년대 이후의 경제성장과 함께하며 문화사업까지 조화를 이루어 세계적으로도 완전한 재벌가를 이루었다. 부러움에 앞서 국가 이미지 선양을 생각하면 아무리 극찬을 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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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뉴스타 장학 재단 장학금 수여식및 하계수련회

2012년 뉴스타 장학 재단 장학금 수여식및 하계수련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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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 살면서 오늘날 미국 매장에서 삼성메이커의 전자 상품을 보면서 한국인임을 자랑스럽게 생각하지 않는 사람이 몇 사람이 되겠는가. 미국 주부들에게서 “삼성 냉장고가, 삼성 셀폰이 최고다”라는 소리를 들으면서 그 촌로인 이병철회장이 한국인임을 무척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그 시대에 호암 이병철은 한국경제의 성장을 어떤 시각에서인지 기업관으로 반도체 산업을 시작했을까? 책을 통해서 보면 순전히 호암 이라는 한사람의 결단과 의지 때문이었다고 한다. 호암은 1960년대 당시 박정희 대통령을 만나 전자산업이 한국의 미래라며 설득을 했다고 한다. 실제로 1968년 정부의 ‘전자공업진흥 8개년 기본계획’을 이끌어내기도 했다. 한 기업인의 의욕과 열정이 국가를 움직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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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이병철회장도 첫 사업이었던 정미소와 운수사업은 실패였다. 그러나 실패 앞에서도 “사업은 반드시 시기와 정세에 맞춰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며 다시 한번 일어선다. 그 후 부정축재자, 주식헌납 등 정치적 수레바퀴에 함께 뒹굴며 어떤 고난에도 좌절은 없었다. 그것은 어쩌면 기업인으로써 그의 식솔 때문이라도 후퇴 할 수 없었는지도 모른다.1976년인가 그는 위암 진단을 받아 병마와 싸우면서도 끊임 없는 진취적 의욕에 불타고 있었다. 그의 기업관에서 볼 수 있는 명언을 하나 소개하자면 “기업의 적자는 한 기업의 적자로 그치지 않는 일종의 사회악(惡)”이라고 했다. 또 “기업 하는 사람의 본분은 많은 사업을 일으켜 많은 사람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하면서 생계를 보장 해 주고 세금을 납부 해 국가 운영을 뒷받침하는 데 있다” 고 말 했다. 참으로 이해하고 내가 하고 싶은 말이기에 따르고 싶은 정신이 아닌가. 한국인은 모든 분야에 모두가 기업정신과 그에 따른 애착심으로 또한 예술 감각으로 문화생활을 할 때 윤택한 역사를 만들 것이라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