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뉴스타부동산

뉴스타부동산은 신뢰와 역사를 자랑하는 한인 최대의 부동산 회사입니다.

당신의 꿈꾸던 집 미국 뉴스타부동산에서 열어드립니다. 자세히보기

칼럼

해외입양자에게 한국국적을 주어야..

뉴스타★ 2016. 2. 24. 10:15




 “내가 알던 한 지인이 있었다. 70년대초 그의 가정은 경제적 궁핍으로 몹시도 어려운 생활을 하고 있었다. 남편은 오랫동안 다니던 회사가 문을 닫으며 실직을 하여 일용직 근로자로 근근히 살아가느라 아들 하나 딸린 세식구마저도 끼니를 잇기 어려운 상황인데 부인은 거기다가 두번째 아이의 임신으로 만삭이었다. 그런데 막상 분만 때가 되어 병원을 가서 아이를 출산하니 놀랍게도 태어난 아이는 세쌍둥이였다.  또 하나의 아이도 견디기 힘든 판국에 아이 네명을 한꺼번에 키우기는 도저히 역부족이었다.  

 

 그 부부는 눈물을 머금고 할수 없이 두 아이를 홀트 아동 복지회를 통해 덴마크에 입양을 보내기로 결정을 하였다.. 그날 밤 부인은 헤어질 두 아이를 끌어안고 가슴이 찢어지는 슬픔으로 온 밤내 흐느낄수 밖에 없었다. 그렇게 두 아이는 어머니의 젖도 먹지 못한채 덴마크로 떠나가야 했고 그렇게 20여년의 세월이 흘러갔다. 


 어머니에게서 헤어진 동생의 사연을 들어 알고 있던 형은 그동안 어디서 살아가는지도 모르는 자신의 헤어진 두명의 쌍둥이  동생들의 소식을 구하기 위해  안타깝게 이리저리 알아보곤 하였다. 차라리 잊는 것이 서로에게 좋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혈육에 대한 그 질긴 그리움은 어쩔수가 없었다. 그러던 어느날  그 형은 우연히 텔레비젼에서 방영된 입양아에 관한 프로그램을 통해 덴마크의 입양아들의 소식을 알려주는 기관의 전화번호를  입수하게 되었다며 나에게 전화를 걸어와 도움을 청했다. 그 가정의 안타까운 사연을 알고 있던 나는  즉시 덴마크로 전화를 걸어 헤어진 쌍둥이의 사연을 소개하며 찾아 줄 것을 요청하였다. 그로 부터 몇주 후 나에게로 걸려온 덴마크의 국제 전화,  그는 더듬거리는 한국말로 자신의 이름은 재선이라 하였다. 그 당시 헤어졌던 쌍둥이 중의 한명이었다. 헤어지기 전 부모가 지어주었던 그 이름을 덴마크의 양부모는 바꾸지 않고 그대로 불러 주었고  그가 잊지 않도록 모국어도 학원을 보내어 가르쳤던 것이었다. 


 그리고 이어지는  그의 흐느끼는 음성 “엄마를 찾을수 있나요? 엄마가.. 엄마가.. 보고 싶어요”  그리고 쏟아 내던 재선이의 한 맺힌 울음 소리, 나도 그만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그리고 덴마크 기관의 도움으로 재선이를 만나게 된 날, 그들을 돕기 위하여 나도 한국을 나갔다. 이미 늙어 버린 재선이의 친부모 그리고 이십년을 애타게 동생을 찾아 헤메던 그 형, 내가 재선이의 손을 이끌며 “이분이 너의 엄마요, 너의 형”이라 말했을 때, 그 들 사이에는 짧은 2-3초 정도의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그리고 재선이의 울먹이는 한 소리 “엄..마”  “형”그리고 그들은 서로 끌어안고 소리내어 울기 시작했다. 20년의 기나긴 그리움의 세월과 회한의 세월이 마침내 만나던 순간이었다.  가슴이 찢어지는 듯한 아픈 울음이었고 아름다운 울음이었다. 그들을 보며 나도 역시 눈물을 흘릴 수 밖에 없었다.” 


( 이 글은 친한 친구인 미주동포 오현씨가  저에게 보내 온 글이다)



 비록 조국에 대한 한 웅큼의 기억도 없던 신생아로 고국을 떠나간 재선이었지만 그의 혈관에는 분명히 한민족의 피가 흐르고 있었고 그의 가슴에는 분명한 조국의 사랑이 담겨져 있었던 것이다.  한국인은 어디에 살든 그들은 분명히 한국인이다. 그것은 법률과 문서로 만들어 지는것이 아니요 그들의 생생한 가슴으로 만들어 지는 것이다


 이런 이들에게 국가와 부모가 방치하였던 국적을 회복시켜주는 것이 바로 그들의 피맺힌 한을 풀어 주고 그들의 애타는 눈물을 닦아주는 길이다. 그 아이는 한국이 가난했기에 버려져서 떠난 아이들이 아닌가? 부모가 키울수 없어서 버려진 아이가 아닌가?  이젠 끌어 안아야 한다. 국력을 위해서도 끌어 안아야 한다. 출산율이 저조한 이 나라의 미래를 위해서도 끌어 안아야 한다. 그 방법은 한국 국적을 회복 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도 수많은 “재선이”들이 이국 땅에서 모국을 그리워 하며 다른 형제들처럼 자랑스러운 한국인이 되기를 갈망하고 있다. 때로는 가난 때문에, 때로는 새로운 희망을 찾아, 때로는 기타 어려운 상황의 돌파구로... 


 그렇게 어렵게 선택한 해외의 길이었지만 오늘날 그들은  현지에서 타 민족도 놀라워 하는 우수한 재능과 열정과 성실함으로 각자의 삶의 자리에서, 학계에서, 예능계에서 그리고 정계와 스포츠계에 이르기 까지 깊숙하게 영향력을 행사하며 뿌리를 내리고 있다. 우리 민족은 예로 부터 귀향성이 강한 민족으로 어느 곳에 있더라도 자신이 두고 온 고향과 친지 고국을 어느 민족보다 강한 애착으로 그리워하며 우리의 문화의 세계화에 선도자 역할을 기꺼히 감당하고 있다. 국적은 가슴에 새겨지는 것이기에....




- "해외한인 참정권과 복수국적, 남문기 저, 113p ~ 118p 인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