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상 '올 오어 낫싱'의 자세를 강조합니다"
[가업을 잇는다] 뉴스타 부동산 그룹 남문기 회장 가족
부동산학교·에스크로 등
한인 최대 '부동산 그룹'
아들·딸 내외까지 합류
'최고의 브랜드로 키우길"
부부는 물론 아들과 딸, 그리고, 사위에 며느리까지. 2대에 걸쳐 가족 6명이 모두 동종 업계 자격증을 갖고 있다. 남편과 아내, 딸은 부동산 브로커 자격을, 나머지는 에이전트 라이선스다.
뉴스타 부동산 그룹(New Star Realty & Investment Group) 남문기(64) 회장 패밀리 이야기다. 남 회장이 '우리는 브로커 가족이야. 뉴스타의 대표 브로커도 28년째 아내인 제니 남으로 돼 있다고"라고 웃으며 이야기할 만도 하다. 남 회장의 부동산 사업에 대한 애정과 열정을 느낄 수 있다.
뉴스타 부동산은 1988년 9월 25일 리얼티월드 뉴스타로 출발, 내년이면 꼭 30년이 된다. 현재, 뉴스타는 부동산학교와 장학재단, 광고기획사, IT회사, 투자그룹, 매니지먼트, 에스크로 컴퍼니 등의 계열사와 30여 개 지사에 본사 직원 80여 명을 포함해 1000여 명이 근무하고 있다.
몇 년 전부터는 아들(알렉스. 34)과 딸(에이미.32) 부부도 합류하면서 사업이 더욱 활기를 띠고, 자연스럽게 경영승계도 진행되고 있다. 4년 전 가세한 에이미는 에스크로 회사의 CEO로 일하고 있다. 애초, 남 회장은 UC리버사이드에서 사회학을 전공한 딸이 정치를 하기를 바랐다. LA한인회장, 미주한인총연합회장,미주한인상공인총연합회장 등 커뮤니티 활동을 하면서 한인 정치력 신장의 필요성을 절실하게 느낀 탓이다.
실제로, 에이미 사장은 주 하원의원 보좌관으로 2년 근무하기도 했다. "정치는 재미가 없었어요. 내게 잘 맞지도 않고, 그래서 정치는 아버지가 하시고 가정을 택하겠다고 했지요."
외부 회사 경험을 쌓느라 뒤늦게 합류한 알렉스는 사내 주요 파트를 돌며 실무를 익히고 있다. 아직 특별한 직함 없이 에이전트다. 그는 "아버지의 리더십과 경험을 따라잡으려면 아직 멀었다. 그래도 기회와 능력이 되면 회사를 운영하고 싶다. 공부 열심히 하고 있다"며 포부를 밝혔다. 의류업체 매니저로 일했던 사위 서지오 성 에이전트도 필드 경험을 쌓고 있다.
부동산학교 운영을 맡고 있는 제니 남 사장은 "사실, 가업을 잇게 한다는 것에 대한 생각이 조금 늦었다. 애들이 좀 더 일찍 합류할 수 있었다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며 "부부가 비즈니스에 매달리느라 잘해주지 못한 미안함이 큰데, 그래도 뉴스타에서 열심히 배우고 이제는 부모의 일을 나누기도 하는 정도라 고마울 뿐"이라고 밝혔다.
건국대 행정학과를 졸업하고 주택은행에 근무하던 남 회장은 결혼 1년 만인 1982년 LA로 왔다. 수중에 가진 것이라고는 달랑 300달러가 전부였다. 유학이 목적인 도미였지만 생활고를 해결하는 게 우선이었다. 우연한 기회에 청소회사에 취업을 했다.
사장과 히스패닉계 청소원 2명이 고작이라 시작부터 팀장을 맡은 남 회장은 해병대(266기) 시절 익힌 강인함과 한인다운 지혜로 금방 회사를 반석에 올려놓았다. 남 회장은 '청소의 달인'으로 인정받았고 4년 만에 직원이 65명으로 느는데 큰 역할을 했다.
그렇게 미국생활에 안정을 찾게 되면서 남 회장은 다른 꿈을 꾸기 시작했다. 부동산이었다. 주택이나 빌딩 청소를 하면서 부동산 경기에 흥미를 갖게 된 것이 새로운 선택을 하게 했다.
시작부터 남달랐다. 1987년 12월 에이전트 자격증을 손에 쥔 남 회장은 여느 에이전트들하고 달랐다. 청소하면서 조금씩 모은 4만 달러 전부를 투자했다.
첫 출근부터 비서를 두고 출발했다고 하니, 유별나기도 했다. 옷에는 이름표를 달았고, 신문과 지역 광고지, 버스 정류장 벤치 등에는 얼굴을 새긴 다양한 광고를 게재했다. 새벽 7시면 출근해 밤 늦게까지 일에만 매달렸다. 남다른 점은 또 있다.
부동산 일을 하고부터는 지금까지도 흰색 와이셔츠에 항상 빨간 넥타이를 매고, 자켓을 입는다. 와이셔츠의 앞 포켓에는 Attitude(태도)라는 단어를 새겨 놓았다. "깨끗하고 공손한 태도는 남에게 좋은 첫인상을 주게 된다. 당연히 고객이 더 많을 수 밖에 없다."
남 회장은 회사 수익의 사회환원 차원에서 장학사업에도 많은 신경을 쓰고 있다. 지난 20일에는 17회째 뉴스타 장학재단 장학금 수여식을 했다. 2001년 개인적으로 시작해 2003년 장학재단으로 확대했다, 올해로 총 1390명에 130만 달러를 지급했다. 지난 5월엔 모교인 건국대에 10만 달러를 쾌척하기도 했다.
남 회장은 성공의 비결을 묻는 사람들에게 가진 걸 전부 걸으라고 조언한다고 했다. "돈 일 수도 있고, 또 능력, 노력이 될 수도 있어요. 실패하는 사람들을 보면, 가진 것을 조금씩 나눠 쓰더라구요. 그러면 안돼요. 모두 쏟아붓고 정직하게 전력투구하는 겁니다. 그만큼 절실하게 달라붙어야 이길 수 있다는 것이지요."
남 회장은 가업을 이을 자식들에게도 늘 같은 말을 강조한다. '올 오어 낫싱(All or Nothing)'이라고. '브로커 패밀리(?)'다운 승부수가 아닌가.
"아버지의 추진력 본받고 싶어요"
가족이 한 회사에서 일하는 것은 흔치 않다. 본사 직원만 80여 명 되는 큰 조직에 아내와 아들, 딸, 사위가 함께 근무한다.
에이전트 자격을 가진 며느리만 아직 다른 회사에 근무 중이다. 남 회장은 며느리까지 조만간 합류하게 되면 완벽한 팀이 구성될 것이라며 기대가 크다.
뉴스타는 8가와 버몬트 애비뉴에 있는 두 개의 빌딩을 본사 건물로 사용하고 있다.
제니 남 사장은 "함께 일을 해도 각자 맡은 일이 있어 한곳에 모이기는 쉽지 않다. 그래도 아주 가끔은 가족끼리 점심도 할 수 있어 좋다"며 "딸은 식사 때만큼은 비즈니스 얘기를 하지 말자고 하지만, 이야기를 하다 보면 어느새 일이 화제가 되곤 한다"며 웃는다. 아들, 알렉스에게 아버지는 우상이다. 알렉스는 "아버지의 추진력은 정말 대단해요. 정말 배울 점이 많다"며 고개를 젓는다.
남문기 회장은 지난 2012년 간암수술을 받았다. 3개월 시한부 삶이라는 진단을 극복하고 지금은 건강을 잘 유지하고 있다.
"아직 할 일이 더 있어서 안 간 것 같다"고 말한 남 회장은 뉴스타가 한국에도 본격 진출하고 미 주류사회에서도 최고 부동산 브랜드로 성장하길 바란다. 또, 기회가 된다면 미주 및 해외 한인들의 권익신장을 위한 비중있는 역할을 맡고 싶다고 했다. 남 회장은 현재 해외한민족대표자협의회 공동의장을 맡고 있다. 대학시절 소개팅으로 만나 결혼한 제니 남 사장은 남 회장을 두고 "사실 돌인 줄 알고 주웠는데, 알고 보니 다이아몬드였다"며 수줍게 웃는다. 뉴스타 부동산을 움직이는 가족의 사랑스런 모습이다.
'브로커 가족'이 가족사진을 찍었다. 남문기 회장, 딸 에이미, 사위 서지오 성, 아들 알렉스,제니 남 사장(맨 앞 부터 시계방향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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