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우리 회사의 웹사이트를 방문하는 네티즌들이 부쩍 늘고 있다. 미국은 물론 한국에서도 찾고 있다. 우리 회사의 인지도가 높아지면서 덩달아 내 개인 홈페이지( www.nammoonkey. com)도 클릭 수가 많아졌다. 내 홈페이지에서 프로필을 본 사람들 중 많은 이들이 전화로 하는 이야기가 있다.
“가훈을 만든다면 ‘그러려니’라고 할까 봐요”라고 말한다. “그런 가훈이 어디 있느냐”고 물으면 그냥 웃는다. 그러면 나도 덩달아 “허허” 하며 “사는 게 다 그렇지요” 하고 받아넘기고는 한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면 살아가면서 이보다 더 적절한 말은 없다는 생각이 자주 든다.
나 자신을 되돌아보면 지금은 많이 부드러워졌지만 피가 끓던 시절에는 꽤나 고집이 셌던 것 같다. 높은 이상과 고고한 철학, 어렸을 적 한번쯤 품어봄직한 남에게 양보할 수 없는 뚝심이라는 게 있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내가 정해 놓은 길이 있었고 나만 옳다고 믿은 적도 있었다. 한 가지 길만이 내 길인 줄 알았고 삶의 정도(正道)라는 하나의 방침이 존재한다고 믿었다.
하지만 나이가 들어가면서 바뀌는 것이 아닌가. 바뀌는 것이 아니고 변하는 것이다. 나이가 들수록 너그러워지고 포용하는 마음도 넓어지고 귀도 열린다고 했던가. 예전엔 이것 아니면 절대 안 되던 마음, 듣고 싶지 않았던 것도 이제는 “아 그것도 괜찮겠네” 하는 여유, 그리고 웬만하면 내 주장을 굽혀 받아들일 줄도 알게 되었다. 어릴 적에는 누구에게 지적당하고 잘못했다는 소리가 그렇게 듣기 싫었는데 이제는 누가 잘못했다고 말하더라도 겸허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아량도 생겼다.
우리 회사가 빠른 시간에 성장한 것은 도움을 주는 많은 사람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하지만 옛말대로 “사촌이 땅을 사면 배부터 아프다”고 해서 그런지 헐뜯는 사람도 있었다. 가끔은 내가 가지도 않은 장소, 하지도 않은 말들, 본 적도 없는 사람과의 이야기가 회자돼 기가 막히고 억울할 때도 있었다.
내 주변에 있는 사람들은 그럴 때마다 나보다 더 흥분해 “진실을 밝혀보자”고도 하지만 왠지 마음이 움직이지 않는다. “그냥 두라고” “그러려니” 하고 관심 갖지 말라고 한다.
세상을 살다보면 누구든지 억울한 일을 당한 경험이 있을 것이다. 특히 자신과 관계없이 구설수에 휘말리기도 한다. 그때마다 일일이 그 루머에 대응하는 것도 방법이겠지만 나이테가 굵어질수록 그렇게 해서 무엇하리 하는 생각이 든다. 소문은 소문일 뿐이고 근거가 없다면 언젠간 물 끓듯 하다가도 금세 사그라질 것이기 때문이다. 사람을 며칠을 속일 수는 있어도 영원히 속일 수는 없는 일이고 거짓으로 성공하는 것은 모래 위의 성이기에 금방 무너진다.
미국에서의 사업 성공은 진실과 성실만이 가능하다고 본다.
어떤 면에서 누군가를 열 내면서 헐뜯고 다니는 사람들을 보면 왜 저렇게 사는가 라는 측은지심이 생기지만 이 때 “그러려니”하는 마음에서 답을 찾을 수 있다. 일평생 착한 일만 하고 살려고 마음먹어도 본의 아니게 죄를 짓고 마는 것이 사람 사는 인생이 아닌가. 하나하나 찾아서 죄짓는 마음 가지고 사는 그 사람 인생은 또 스스로 얼마나 괴롭고 고달프랴. 비틀즈의 불후의 명곡 ‘Let it be’에서도 의미를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And when the night is cloudy (구름 덮인 밤일지라도),
There is still a light that shines on me (다음 날이 밝을 때까지),
Shine on until tomorrow (나를 밝혀줄 등불은 여전히 있어요),
Let it be(순리에 맡기세요)
사람이 쉰이 넘으면 지천명이라 했다. 50이 넘고 내가 알게 된 하늘의 명이라면 내가 100% 옳은 것도 없고 남이 100% 그른 것도 없다는 사실이다. 일평생 아등바등 하며 사느니 그냥 순리대로 “그러려니” 하고 넘어 가자는 것이다. 물은 가만히 두면 위에서 아래로 흐르고 우리의 인생살이도 제가 한 만큼 언젠가 받게 된다. 순리대로 놓아두면 억지로 떼쓰지 않아도 언젠가 제가 가야 할 자리로 자연스레 가게 되어 있는 게 우리네 인생살이인 것 같다. 하늘을 가볍게 나는 새의 뼈는 거의 비어 있다고 한다, 몸을 가볍게 하기 위해서는 많은 것을 버려야 한다는 말이기도 하다. 채우기도 어렵지만 버리기는 더 어렵다고 한다. 살아가면서 채우기만 급급한 나머지 버리는 일을 잊어버리고 산 사람도 많다. “그러려니” 그 한마디가 모든 것을 가볍게 할 것이다. 물론 포기나 체념은 아니다. (213)999-4989
www.newstarrealty.com
ceo@newstarrealty.com
남문기
<뉴스타 부동산 대표>
“가훈을 만든다면 ‘그러려니’라고 할까 봐요”라고 말한다. “그런 가훈이 어디 있느냐”고 물으면 그냥 웃는다. 그러면 나도 덩달아 “허허” 하며 “사는 게 다 그렇지요” 하고 받아넘기고는 한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면 살아가면서 이보다 더 적절한 말은 없다는 생각이 자주 든다.
나 자신을 되돌아보면 지금은 많이 부드러워졌지만 피가 끓던 시절에는 꽤나 고집이 셌던 것 같다. 높은 이상과 고고한 철학, 어렸을 적 한번쯤 품어봄직한 남에게 양보할 수 없는 뚝심이라는 게 있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내가 정해 놓은 길이 있었고 나만 옳다고 믿은 적도 있었다. 한 가지 길만이 내 길인 줄 알았고 삶의 정도(正道)라는 하나의 방침이 존재한다고 믿었다.
하지만 나이가 들어가면서 바뀌는 것이 아닌가. 바뀌는 것이 아니고 변하는 것이다. 나이가 들수록 너그러워지고 포용하는 마음도 넓어지고 귀도 열린다고 했던가. 예전엔 이것 아니면 절대 안 되던 마음, 듣고 싶지 않았던 것도 이제는 “아 그것도 괜찮겠네” 하는 여유, 그리고 웬만하면 내 주장을 굽혀 받아들일 줄도 알게 되었다. 어릴 적에는 누구에게 지적당하고 잘못했다는 소리가 그렇게 듣기 싫었는데 이제는 누가 잘못했다고 말하더라도 겸허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아량도 생겼다.
우리 회사가 빠른 시간에 성장한 것은 도움을 주는 많은 사람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하지만 옛말대로 “사촌이 땅을 사면 배부터 아프다”고 해서 그런지 헐뜯는 사람도 있었다. 가끔은 내가 가지도 않은 장소, 하지도 않은 말들, 본 적도 없는 사람과의 이야기가 회자돼 기가 막히고 억울할 때도 있었다.
내 주변에 있는 사람들은 그럴 때마다 나보다 더 흥분해 “진실을 밝혀보자”고도 하지만 왠지 마음이 움직이지 않는다. “그냥 두라고” “그러려니” 하고 관심 갖지 말라고 한다.
세상을 살다보면 누구든지 억울한 일을 당한 경험이 있을 것이다. 특히 자신과 관계없이 구설수에 휘말리기도 한다. 그때마다 일일이 그 루머에 대응하는 것도 방법이겠지만 나이테가 굵어질수록 그렇게 해서 무엇하리 하는 생각이 든다. 소문은 소문일 뿐이고 근거가 없다면 언젠간 물 끓듯 하다가도 금세 사그라질 것이기 때문이다. 사람을 며칠을 속일 수는 있어도 영원히 속일 수는 없는 일이고 거짓으로 성공하는 것은 모래 위의 성이기에 금방 무너진다.
미국에서의 사업 성공은 진실과 성실만이 가능하다고 본다.
어떤 면에서 누군가를 열 내면서 헐뜯고 다니는 사람들을 보면 왜 저렇게 사는가 라는 측은지심이 생기지만 이 때 “그러려니”하는 마음에서 답을 찾을 수 있다. 일평생 착한 일만 하고 살려고 마음먹어도 본의 아니게 죄를 짓고 마는 것이 사람 사는 인생이 아닌가. 하나하나 찾아서 죄짓는 마음 가지고 사는 그 사람 인생은 또 스스로 얼마나 괴롭고 고달프랴. 비틀즈의 불후의 명곡 ‘Let it be’에서도 의미를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And when the night is cloudy (구름 덮인 밤일지라도),
There is still a light that shines on me (다음 날이 밝을 때까지),
Shine on until tomorrow (나를 밝혀줄 등불은 여전히 있어요),
Let it be(순리에 맡기세요)
사람이 쉰이 넘으면 지천명이라 했다. 50이 넘고 내가 알게 된 하늘의 명이라면 내가 100% 옳은 것도 없고 남이 100% 그른 것도 없다는 사실이다. 일평생 아등바등 하며 사느니 그냥 순리대로 “그러려니” 하고 넘어 가자는 것이다. 물은 가만히 두면 위에서 아래로 흐르고 우리의 인생살이도 제가 한 만큼 언젠가 받게 된다. 순리대로 놓아두면 억지로 떼쓰지 않아도 언젠가 제가 가야 할 자리로 자연스레 가게 되어 있는 게 우리네 인생살이인 것 같다. 하늘을 가볍게 나는 새의 뼈는 거의 비어 있다고 한다, 몸을 가볍게 하기 위해서는 많은 것을 버려야 한다는 말이기도 하다. 채우기도 어렵지만 버리기는 더 어렵다고 한다. 살아가면서 채우기만 급급한 나머지 버리는 일을 잊어버리고 산 사람도 많다. “그러려니” 그 한마디가 모든 것을 가볍게 할 것이다. 물론 포기나 체념은 아니다. (213)999-4989
www.newstarrealty.com
ceo@newstarrealty.com
남문기
<뉴스타 부동산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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